
25/08/04
완독
이직한 회사는... 매달 문화의 날마다 2만 원씩 문화비를 실비로 제공해 주는 복지가 있다길래 바아아아아아로!! 마침 또 조예은 작가님 신간이 올라왔길래 바아아아로 결제해 놓고 읽었다. 조예은 작가님 책 읽고 단 한 번도 실망한 적이 없음. 나의 보장된 극호 작가님.. 이번 책도 진짜 너무 맘에 들었다.
첫 번째 수록작인 치즈 이야기는 약간 고어한 소재 같은데, 사실 나는 좀 슬픈 이야기로 보였다. 유년시절 부모에게서 받은 방치와 학대로 평생 고통받는 주인공이 결국 엄마에게 복수하게 되는 이야기처럼도 보이지만 그만큼 계속 그 시절에 받은 학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세 번째 수록작인 수선화에 스치는 바람도 엄마의 학대에 가까운 양육방식으로 어딘가 뒤틀어진 관계의 쌍둥이 자매 이야긴데 진짜.. 학대할 거면 대체 애는 왜 낳았냐는 생각만 계속 들었고.. 수미는 본인이 선희를 위해 희생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그냥 동생을 지독하게 통제하고 싶어 하는 모습 자체도 약간 둘의 엄마가 맘에 안 들면 때리고, 숨 틀어막으며 통제하려고 했던 그 모습 그대로라서 좀 징그러워 보였음.
두 번째 수록작인 보증금 돌려받기가 사실.. 나는 제일 현실공포였음. 월세살이 인생 + 이사 예정 키워드가 너무 내 지금 상황과 겹쳐가지고..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공포감, 여자 혼자 사는 집에 무턱대고 새벽에 술 마시고 방 보여준다며 찾아오는 집주인, 치안이 나쁜 골목길.. 하나하나 맘에 안 드는 것 투성이인 집이지만 보증금을 돌려받기 위해 방을 보러 온 사람에게 입발린 거짓말을 하며 폭탄 떠넘기기 하는 상황까지 완전 현실공포, 책 소개를 보니까 이 단편은 작가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이야기란다.. 어쩐지 너무 현실공포였어..
반쪽머리의 천사는 이 책에서 제일 맘에 든 단편이다. 이름처럼 항상 우승하던 육상 유망주였던 우승하는 뇌동맥류 때문에 육상선수의 꿈을 접고 고3 여름방학을 시골에 있는 삼촌의 오래된 영화관에서 보내는데, 극장 상영관에서 상영 중이던 영화 속에서 그대로 튀어나온 조연캐릭터 기주영을 만나게 된다. 영화 속에서 죽은 모습 그대로 나타난 기주영을 성불(?) 시켜주기 위해 비밀을 풀어가는 과정이 정말 귀엽고 청춘이라는 느낌도 받았고, 작가님의 예전 작품인 테디베어는 죽지 않아 를 읽었을 때 느꼈던 그런 기분이었다. 너무 좋았다는 말임.
소라는 영원히는 수록작 중에 꽤 볼륨이 있는 파트였는데 처음엔 그냥 사이코메트리 능력을 가진 소녀의 이야기구나.. 하고 읽다가 점점 뭔가 신적인 존재처럼 느껴지는 게... 내용적 유사점은 없는데 약간 영화 사바하 속 '그것'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모든 사람의 기억을 읽고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존재는 사실 신이라고 해도 무방한 것 아닐까?
두 번째 해연은 이미 죽은 딸 해연의 기억을 그대로 이식한 인조인간인 두 번째 해연을 딸로 인정하지 않는 아버지 백연과 그 옆을 지키는 두 번째 해연의 이야기다. 백연이 알츠하이머에 걸리고 본인의 기억을 잃어가며 해연에게 '내가 딸이 죽었다는 사실마저도 잊는다면 너는 정말로 해연이 되어버리는 걸까?' 하고 물어본 질문에 대한 해연의 대답이 이 단편의 핵심 문장이 아닐까 싶었음. '저는 저로 남아 있을 거예요. 제가 모든 걸 기억하니까요.' 어쩌면 사람의 본질은 기억에 있다는 말 같기도 하고... 근데 똑같은 기억을 가지고 있으면 똑같은 사람으로 봐야 하는 걸까? 좀 어려운 이야기다.
마지막 수록작인 안락의 섬은 소중한 존재와의 이별을 받아들이는 이야기구나... 싶었다. 죽음을 앞둔 반려견 플루가 죽으면 본인도 살아남을 이유가 없다며 함께 죽음의 섬으로 떠난 수수가 그 섬에서 플루와 정말 비슷한 성격인 라마를 만나 결국 죽음을 포기하고 다시 살아가는 이야긴데, 뭐랄까.. 저런 섬이 실제로 있다면 나는 미련 없이 편안한 죽음을 택할까? 맨날 죽겠다고 노래를 부르지만 부모님이나 친구들, 우리 집 늙은 똥강아지 생각하면 생각만큼 쉽게 죽음을 선택하진 못할 것 같기도 하고...
책 읽는 내내 이런저런 생각도 많이 들었고 역시나 재미있었다. 조예은작가넴 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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